인도남부지역South India첸나이(Chennai) 한 항구도시로 남부 인도 최대의 도시이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이다. 1640년 영국 동인도회사가 본래 어촌인 이곳에 세인트조지 성채를 구축하고 교역기지로 삼은 것이 시(市)의 시초이다. 성채를 중심으로 해안의 사구(砂丘)를 따라 시가지가 발달하고, 성채 북쪽에 오래 된 상업지구인 조지타운이, 남서쪽에 새로운 상업지구이며 부도심인 마운트로드가 형성되었다. 성채에서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마리너비치로드는 아름다운 거리로 알려져 있으며, 시민의 산책로이다. 항구는 성채 북쪽에 인공적으로 굴착된 것으로, 1만t급 이상의 선박이 접안 가능한 부두 18개가 있다. 철도는 북부의 센트럴역으로부터 콜카타·델리·뭄바이·방갈로르로 뻗고, 남쪽의 이그모아역으로부터 주내(州內) 및 케랄라주·마이소르주 방면으로 협궤철도가 뻗어 있다. 국제공항도 있어서, 유럽·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와 항공로가 개설되어 있다. 면직물·기계·차량·정유·고무·비료 등의 공업이 성하며, 피혁·철광석·면직물을 수출한다. 또 영화산업의 도시이고, 마드라스대학교을 비롯하여 공과대학·의과대학 및 미술관·박물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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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년에 동인도회사가 들어오고 나서 영국이 1654년에 최초로 완성시킨 성채로, 후에 확장되어 1749년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그 후 무굴제국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1746년에는 프랑스군에 함락되기도 하였으나, 영국의 남인도 지배의 거점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 성채는 작은 도시와 같은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주요 건물은 주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성채 안에는 1679년에 세운 영국 국교회 세인트 메리 교회(St. Mary's Church)가 있다. 인도 국내에 영국이 세운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 성채 한구석에 있는 성채 박물관(Fort Museum)에는 식민지 시대의 무기와 훈장, 동전, 식기 외에 동인도회사 관계의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갈로르(Bangalore)
카르나타카 주 정부관광청에서 운행하는 시내관광은 오전과 오후 두차례있다. 여행자 안내소의 기차역 지점을 통해서도 예약 할수 있는데 75루피이다. 티푸 술탄 궁전,불사원,랄박가든,울수르호수, 바다나 소우다 그리고 두 박물관을 둘러보는데,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정이 아닌 관계로 주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장과 기념품점까지도 직접 들른다.
불
사원(Bull
temple)
시가지
남쪽
랄박
식물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에
있는
버글
힐위에
켐프
고우다가
드라비디언
양식으로
지은
사원이다.
하나의
바위를
이용하여
6.2m 높이로
깎아놓은
난디상이
모셔져
있다.
근처에는
110kg의
굳은
버터를
이용하여
조성한
코끼리
머리를
가진
신
가네쉬를
모신
사원이
있다.
이
버터로
만든
신상은
매
4년마다
허물어져
신도들
사이에
나뉘고,
신도들로부터
기증
받은
새로운
버터로
다시
조성되고
있다
한다.
쿱번공원(Cubbon
park)
1864년
당대의
지역
담당관이었던
영국인
이름을
따서
시작된
면적
3,000에이커의
쿱번공원은
이제
도심에
위치하게
되어
심각하게
오염되어
가는
도시의
숨통역할을
하고
있다.
비다나
소우다,
그리스
형식
건물들인
도서관과
상급
법원,
정부
박물관,
수족관,
그림
전시관,
너무나
장중하고
아름다워
우체국이라
믿기가
힘든
건물
등이
쿱번
공원의
주변
혹은
공원
안에
자리하고
있다.
1886년에
시작된
정부
박물관은
모헨조다로의
유물관
등
18개의
전시실을
가지고
있다.
입장료는
50루피이고
수요일과
공휴일엔
문을
닫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한다.
기술박물관과
수족관이
바로
옆에
있는데
입장료는
각각
1루피이고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개관하며
월요일과
공휴일은
휴관한다.
같은
구역에
있는
화랑은
마이소르
마하라자의
전용화가였던
벤카파의
이름을
전시관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곳으로
대관
전시를
위주로
하고
있어
현대
인도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개
한다.
비다나
소우다(Vidhana
Soudha)
주
장관실과
입법부로
사용되고
있는
이
인상적인
건물은
신
드라비디언
양식으로
1954년에
지어진
5층
건물이다.
화강암을
이용하여
지은
이
건물은
각료실로
쓰이는
방의
백단향
나무로
만들어진
육중한
문이
또한
화제
거리인데,
1층의
현관만이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일반인들에게
공개
된다.
마리나 해변(Marina beach)
세인트 조지 성채에서 남쪽 쿤강(江)을 건너면 마리나 비치 로드가 뻗어 있고, 5Km가 넘는 백사장이 펼쳐진다. 이 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산책하면 1시간 반이나 걸린다. 백사장을 따라 좌우로 안나두라이 기념묘와 체파우크 궁전, 시영 풀, 수족관 등이 늘어서 있다.
카팔레스와라 사원(Kapaleeswara Temple)
첸나이 관광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사원이다. 전형적인 남인도 건축양식의 드라비다 건축인데, 1250년에 세웠고 16세기에 대대적인 수축을 하였다. 수많은 신들과 성자의 조각이 들어차 있으며, 높이 37m의 산문이 있다. 사원 앞에는 더러움을 씻는 못이 있고, 안으로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된다. 또 본전에는 힌두 교도밖에 들어갈 수 없다.
.케랄라 (Kerala)
면적은
3만
8863㎢,
인구는
3183만
8619명(2001)이다.
주도는
트리반드룸이다.
서고츠산맥의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구릉지대와
아라비아해에
면한
해안
평야로
이루어졌으며,
말라얄람어를
쓰는
지역과
일치한다.
예로부터
남인도의
타밀
왕국인
체라
또는
케랄라국으로
알려져
왔다.
중세에는
이웃
미소레
왕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나,
차차
독자적
문화를
형성하여
영국통치시대에도
남부는
트라방코르코친의
번왕국으로서
존속하였다.
1956년
북쪽에
있는
마드라스주의
일부와
합쳐서
케랄라주가
편성되었다.
해안지역은
말라바르해안이라고
하며,
코친·코지코드·알레피
등의
양항이
있다.
구릉부에서는
후추·카르다·차·고무
등이
산출되고,
평야부에서는
쌀·코코야자
등이
재배된다.
연안
항구는
고대부터
동서무역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으며,
예로부터
그리스도
교도와
이슬람
교도가
많이
거주하였다.
현재도
그리스도
교도가
주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른
주에
비해
높다.
인도
주정사에서
최초의
공산당정부(1957∼1959)가
생긴
곳으로
교육
수준이
높으며
문맹률이
인도
주
가운데
가장
낮다.
유럽과
최초(1498)로
접촉한
지방으로
바스코다가마와
관계있는
곳을
비롯하여
사적이
많다.
케랄라주의 가옥과 사원은 목조이며, 페리야르강의 알웨이에서는 금속공업이 활발하다.
코치(kochi)
케랄라주의
대표적인
도시이다.
인구는
58만
2588명(1991)이다.
트리반드룸
북서쪽
약
170km, 말라바르
해안에
있다.
1502년
바스코
다
가마에
의해서
포르투갈의
상업
거점이
된
뒤,
1503년에는
포르투갈인
총독
A.알부케르케가
요새를
구축하였다.
그
후
영국·네덜란드
등이
진출하여
상업
중심지로서
번창하였다.
영국령
시대에는
코친을
수도로
하는
코친
번왕국이
형성되었다.
현재는
에르나쿨람·마탄체리
등과
함께
코치
대도시권을
형성하며,
코치항에서는
이
지방에서
산출되는
차·캐슈넛·코코넛·향료
등이
수출된다.
야자수피
산업
외에
조선업
등의
근대
산업도
발달하였다.
시내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묘소,
유대교도의
거주구
등
유럽과의
교류를
나타내는
사적이
많다
말라바르해안(Malabar
coast)
인도반도
남부의
서해안
전역.
좁은
뜻으로는
케랄라주
해안만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
파나지
이남의
카르나타카주와
케랄라주에
걸쳐
있는
약
950㎞의
해안을
말한다.
서고츠산맥과
아라비아해에
둘러싸인
나비
10∼80㎞의
좁고
긴
해안평야인데,
대형제방과
사구·석호가
줄지어
있으며,
그
배후에는
두터운
라테라이트성
피각으로
덮인
해발고도
150m 이하의
구릉과
해안단구가
가로놓여
있다.
망갈로르의
이남은
해안선이
단조로워,
복잡한
해안선이
계속
이어지는
파나지·봄베이
부근과는
매우
다르다.
서고츠산맥은
고도가
1000∼1500m이며
거의
연속적으로
말라바르
해안과
이어져
데칸고원으로의
교통장벽이
되고
아라비아해에서
불어오는
남서몬순을
차단하므로,
이
지역에
많은
양의
비가
내린다.
연강수량은
망갈로르
3100㎜,
코친
2400㎜,
남단의
코모린곶은
1000㎜이며
80%는
6∼9월
남서몬순기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반대로
남쪽으로
갈수록
우기가
길어져
코모린곶에서는
북동몬순의
영향도
받아
8∼9월
무렵이
우기가
된다.
고습다우한
기후로
산림이
무성하고
석호
주변이나
저지대에는
코코야자의
울창한
산림을
이루며,
하곡은
무논으로
이용된다.
예로부터
이
지방은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아라비아·동남아시아와
교역을
해왔다.
근세
이후
유럽인과도
통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서고츠와
그
남쪽으로
이어지는
닐기리·카르다몬
두
구릉에서
산출되는
향료·커피·차
등을
수출하였다.
그로
인하여
외래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리스도교도의
비율과
식자층이
다른
지방보다
높으며
진취성도
강하다.
주민의
대부분이
드라비다계이며
케랄라주에서는
말라얄람어,
카르나타카주에서는
칸나다어를
사용한다.
예로부터
캘리컷·코친·파나지는
무역항으로
유명하였으며
망갈로르
등의
항만
정비도
진척되었다.